비케디(BKD)의 베트남 이야기, [일곱 번째 이야기] 후에 황궁(Imperial palace in Hue)


  안녕하세요? 비케디(BKD)입니다 :) 지난 포스트에서는 하노이 최대 번화가인 하노이 구시가에 대해서 소개해드렸었죠. 지난 포스트까지는 베트남 북부와 관련된 내용이 많았어서 오늘은 시선을 조금 아래로 옮겨 중부의 도시 후에(Hue)로 가보고자 해요. 최근 많은 한국인 여행객들이 다낭(Da Nang)과 호이안(Hoi An)을 찾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시간적 여유가 되신다면 일정을 조금 넉넉하게 잡아 후에도 함께 다녀오시는 것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요! 후에는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 시기의 수도였기 때문에 정말 많은 세계문화유산이 남아있기 때문이죠 ㅎㅎ 저도 개인적으로 후에를 좋아해서 벌써 세 번이나 다녀왔어요. 오늘은 그 중에서 특히 응우옌 왕조의 황제가 거주하였던 후에 황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후에라는 도시는 현재 다낭에서 버스나 차를 타면 3시간 정도 걸리는데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곳은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베트남의 수도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황제가 거주하였던 황궁이 남아있어요. 후에에 남아 있는 응우옌 왕조의 여러 유적지 중에서도 황궁은 정말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에요. 황궁과 그 앞의 기대(旗臺)는 후에의 상징이기도 하죠. 자 그럼 위치 한번 보고 가실까요?!



  여행객들을 위한 신시가지에서 흐엉 강을 건너고 다시 바깥 해자를 건너 외성의 내부로 들어가면 거대한 기대가 우뚝 솟아 있습니다. 이곳에는 현재 베트남의 붉은 국기가 걸려 있는데요. 응우옌 왕조 시기만 해도 이 기대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거대한 황색 기가 걸려있었다고 해요! 후에의 황궁은 베트남에서는 일명 '다이 노이(Đại Nội)'라고 불리고 있어요. 다이 노이는 해자로 둘러싸여 있는데 황궁의 정문인 오문(午門)을 지나면 그 중심에는 황궁의 가장 중심되는 건물인 태화전이 있습니다. 이곳은 황실과 국가의 주요 행사가 열리던 곳이죠. 사실 태화전 뒤로 황제의 집무 공간인 근정전, 자금성, 건중전과 같은 건물들도 있었지만 베트남 전쟁 당시 모두 파괴되고 지금은 태화전과 그 뒤의 일부 부속 건물들만 남아있어요. 서쪽편에는 응우옌 왕조의 황제들과 그 조상들의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이 있고 응우옌 왕조의 왕권을 상징하던 거대한 9개의 솥인 구정(九鼎)이 있습니다. 동쪽편에는 황실의 극장인 열시당과 태평루 등이 있고요. 마지막으로 뒤쪽에는 연수궁, 장생궁과 같이 황제의 가족들을 위한 공간이 있어요!


  다이 노이에서 눈길을 끄는 볼거리들은 다이 노이 앞을 지키고 있는 우뚝 솟은 기대와 정문인 오문, 태화전, 사당과 구정입니다. 그곳의 모습을 지금부터 한번 보실까요?


후에 황궁 앞 우뚝 솟은 기대의 모습(2016년 7월). 그 규모가 거대하다. 현재는 붉은 베트남 국기가 걸려있지만 100년 전만 해도 황제의 상징인 황색 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다이 노이의 정문인 오문(2016년 7월). 해자를 건너면 오문을 통해 다이노이로 들어갈 수 있다. 황제가 출입하던 가운데 문은 현재 사용하지 않고 양쪽 문을 사용하고 있다.


응우옌 왕조의 사당(2016년 7월). 이곳에 응우옌 왕조를 건설한 쟈롱(Gia Long) 황제를 비롯한 여러 황제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막상 찾아보니 사진이 많지 않아 이 정도만 보여드리게 되었네요 :( 태화전의 사진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게 너무나 아쉬워요. 태화전은 내부 촬영은 불가능 하지만 외부 촬영은 가능하거든요! 자 그럼 오늘은 중부의 고도 후에의 황궁인 다이 노이에 대해서 알아 보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중부 베트남을 여행할 일이 있으시면 시간을 내서 후에를 꼭 방문해보세요. 찬란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응우옌 왕조의 유적들이 여러분을 맞이할 거에요! 



비케디(BKD)의 베트남 이야기, [여섯 번째 이야기] 하노이 구시가, 36거리


  안녕하세요? 비케디입니다. 지난 포스트에서는 베트남 여행을 계획할 때 어떤 곳을 여행지로 선택하면 좋을지를 베트남 북부, 중부, 남부로 나누어 살펴 보았어요. 분량 조절을 나름 한다고 노력했는데 쓰다보니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아 읽기에 조금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었네요 :( 앞으로 더 노력하겠습니다! 자 그럼 오늘은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의 36거리에 대해 소개해보려고 해요! 


  [세 번째 이야기]에서 호안끼엠 호수(Hoan Kime lake)에 대한 설명을 드렸었죠? 말씀드렸다시피 호안끼엠 호수는 하노이에서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에요. 일단 대략적으로 위치를 한번 볼까요?



  이 호안끼엠 호수의 주변에 위치한 구시가(영어로 Hanoi old quarter, 베트남어로 Phố Cổ Hà Nội)의 여러 거리에는 수많은 상점과 식당, 그리고 호텔, 게스트 하우스 같은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들이 자리하고 있어요. 때문에 하노이를 방문하는 여행객이라면 십중팔구 이곳을 방문하기 마련이죠. 하노이 최대의 랜드마크인 하노이 구시가는 36개의 거리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래서 '하노이 36거리(36 streets)'라고 하면 이곳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곳은 11세기부터 형성이 되었는데요. 11세기 하노이가 수도로 정해지면서 수많은 장인들이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해요. 또한 36거리의 위치가 베트남 북부의 젖줄인 홍강(Red river)의 바로 서쪽이자 황제가 거주하던 황성(Hanoi Citadel)의 동쪽이거든요. 그래서 홍강을 통해 운반된 수많은 물자들이 하노이에 내려지면 황성으로 옮겨지기 전 이곳 36거리에 모두 모였었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현재 이곳 구시가 대다수의 거리는 'Hàng ________'와 같은 형식의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Hàng Muối(항 무오이)', 'Hàng Bạc(항 박)', 'Hàng Bồ(항 보)' 이런 식으로 말이죠. 이 거리의 이름을 보면 그 거리가 취급하던 물자의 종류를 파악할 수 있기도 합니다. 베트남어로 'Hàng'은 상품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그 뒤에 'Muối(소금)', 'Đường(설탕)', 'Bạc(은)'과 같이 그 거리가 취급하던 품목의 이름이 붙은 것이죠. 물론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그대로 지켜지고 있지도 않고 많은 변동도 있지만 형성 과정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숨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에요! 


호안끼엠 호수 북쪽 5거리가 만나는 로터리(2016년 7월). 이곳은 구시가의 입구와 같은 곳으로 이보다 북쪽에 하노이 구시가가 형성되어 있다. 


하노이 구시가의 항마(Hàng Mã) 거리(2016년 9월). 'Mã'는 미신에서 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해 실제 사물들의 모양을 본떠서 잘라 만든 종이를 의미한다. 현재 이 거리의 상점 대부분은 장난감을 취급하고 있다. 사진은 2016년 중추절(Trung Thu, 음력 8월 15일로 우리나라의 추석과 유사) 직전 항마 거리의 모습인데 베트남에서 중추절은 큰 명절이라기 보다 아이들을 위한 날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 때문에 중추절을 전후로 하여 장난감을 취급하는 항마 거리는 각종 등장식과 장난감으로 가득하고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


  오늘은 하노이의 최대 번화가이자 오랜 역사를 간직한 하노이 구시가, 36거리에 대해 알아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언젠가 하노이를 여행하실 일이 생기신다면 베트남 전통의 모습을 간직한 하노이 구시가를 방문하여 거리의 이름을 보고 그 거리가 취급하고 있는 품목이 무엇인지 한번 유추해보세요 :) 이상 비케디였습니다! 

비케디(BKD)의 베트남 이야기, [다섯 번째 이야기] 베트남 여행지 선택


  안녕하세요? 거의 한달 넘게 게시물을 포스팅 하지 못하였어요 :( 지난 한달 동안 개인적으로 바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 준비도 하지 않고 너무 대책없이 블로그를 시작한 것 같아서 어떤 컨텐츠로 블로그를 채워나가면 좋을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저의 지난 포스트들이 좀 딱딱하고 무거운 내용이라는 조언을 해주어서 방식을 조금 바꾸어볼까 해요. 문체도 대화체로 바꾸고 간단히 읽을 수 있는 이야기로 블로그를 채워 나가볼까 합니다. 그럼 다시 시작해볼게요!


  지난 포스트에서는 베트남 여행이나 거주에서 주소를 찾는데 큰 도움이 되는 베트남의 거리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베트남 여행지 선택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해요. 요즘 정말 많은 한국인이 베트남 여행을 하고 있는데요. 처음 베트남을 가는 분들은 어느 여행지를 선택해야 할지 많이 고민하실 것 같아요. 물론 한국에는 다낭이 정말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다낭 말고도 좋은 곳이 정말 많거든요. 다만 이 글에서는 베트남의 3대 대도시인 하노이, 다낭, 호찌민(사이공)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고 기회가 된다면 다음 기회에 다른 곳도 소개할게요! 


  먼저 베트남 사람들이나 베트남 연구자들은 베트남의 지역을 구분할 때 흔히 북부, 중부, 남부로 구분합니다. 이러한 구분은 베트남 역사와도 연관이 깊어요. 북부의 중심지가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이고, 중부의 중심지가 휴양지로 유명한 다낭이며, 남부의 중심지가 베트남 최대 도시인 호찌민(사이공)입니다. 이 세 도시는 각기 다른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고 어느 곳을 방문하느냐에 따라서 여행의 코스 또한 달라집니다.


  먼저 북부의 하노이(Hanoi)를 볼까요?! 하노이는 제가 지난 번 포스트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베트남의 수도이자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입니다. 건설된 지 천년이 넘은 역사의 도시이기도 하고요. 제 생각에 하노이는 베트남의 '전통적' 모습과 '현대적' 모습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도시 곳곳에 다양한 문화유적들과 역사적 장소가 산재해 있는 한편 경남 랜드마크 72, 롯데센터 등을 통해 현대적인 모습들도 볼 수 있습니다. 하노이라는 도시는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또한 하노이를 비롯한 북부는 우리나라처럼 4계절이 있는 지역이라서 겨울에 가면 영상 15~20도 정도 되는, 여행에 가장 알맞은 날씨를 느껴보실 수 있어요! 하노이가 속해있는 베트남 북부 지역에는 소수 민족이 살고 있는 고산지대인 싸파(Sapa),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판시판(Fan Si Pan), 우리나라의 인천과 같이 수도의 관문 역할을 하는 하이퐁(Hai Phong) 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간직한 역사의 도시인 닌빈(Ninh Binh),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인 하롱베이(Ha Long bay), 하롱베이의 축소판인 란하베이(Lan Ha bay)와 깟바(Cat Ba) 섬 등이 있습니다. 특히 닌빈에 있는 짱안(Trang An)이라는 곳은 제가 베트남에서 가본 곳 중에 가장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어요. 2016년 12월에 제가 갔을 때는 영화 '킹콩 2'의 촬영지로 대대적 홍보가 이루어지고 있었어요 :) 북부는 역사적으로 줄곧 베트남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최근 들어 하이퐁으로 가는 비행편이 생겨 하이퐁으로 가서 하롱베이를 둘러보는 분들도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하노이를 가보신 분이라면 그런 여행경로를 추천드리지만 그게 아니라면 일정을 넉넉히 잡아 하노이로 가셔서 그곳에서 하롱베이를 가시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 닌빈의 짱안(2016년 12월). 사진에 보이는 것과 같은 쪽배를 타고 2시간 동안 8개의 동굴을 지나고 여러 자연경관을 구경한다.


  다음으로 베트남 중부는 최근 한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핫한 도시인 다낭(Da Nang)이 있는 곳입니다! 다낭은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거치면서 베트남의 주요항구로 자리잡게 되었는데요. 19세기 등장한 베트남 최초의 통일 왕조인 응우옌(Nguyen) 왕조의 수도가 후에(Hue)였다는 점도 다낭이 성장하는 데 있어 영향을 주었을 거에요. 다낭은 세계 6대 해변 중의 하나인 미케 비치(My Khe beach)가 있어 휴양지로 정말 유명해졌죠. 제가 2016년 11월 다낭과 호이안(Hoi An)을 방문하였을 때 다낭에서 호이안으로 향하는 해변가에 수많은 리조트가 있는 것을 보고 그 명성을 실감하였어요. 사실 제가 다낭에 대해서는 하노이나 호찌민에 비해 아는 것이 적어요. 하노이에서는 6개월 동안, 호찌민에서는 3개월 동안 살았던 반면에 다낭에는 3번 정도 가본 것이 전부였거든요. 다만 제가 다낭에 갔을 때 다낭이 휴양지로서 굉장히 멋진 곳이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어요. 다낭이 있는 중부에는 응우옌 왕조의 수도이자 지금도 황궁, 황릉 등 수많은 세계 문화유산이 남아있는 고도 후에(Hue), 16세기와 17세기에 국제 무역항으로 큰 명성을 누렸던 호이안(Hoi An), 베트남 분단 시절 비무장 지대가 있었던 동하(Dong Ha), 베트남 중부가 참파의 땅이던 시절 참족의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미썬(My Son) 등이 있습니다. 즉 이곳 중부는 베트남, 참파의 문명이 공존하는 곳임과 동시에 항구 도시의 영향으로 중국적, 일본적 모습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요즘 많은 한국인들이 다낭과 호이안을 패키지로 묶어 여행을 가고 있는데요. 시간이 된다면 일정을 조금 여유롭게 잡아 근처의 미썬이나 응우옌 왕조의 수도였던 후에 등도 방문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다낭에서 호이안은 차로 40분, 미썬은 호이안에서 차로 40분, 후에는 다낭에서 차로 3시간)



응우옌 왕조의 수도였던 후에 황궁의 정문인 오문(2016년 7월). 중국의 자금성을 본따 만든 후에 황궁은 응우옌 왕조의 역사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호이안의 중국인 거주지와 일본인 거주지를 구별하던 다리인 원교(2016년 11월). 내원교는 베트남 화폐 2만 동짜리의 뒷면에 그려져 있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베트남 남부는 베트남 최대 도시이자 경제의 중심지인 호찌민(Ho Chi Minh, 일명 사이공 Saigon) 시가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본래부터 베트남의 영토가 아니였고 캄보디아의 영토였는데요. 17~18세기 베트남의 남진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던 시기 베트남의 영토로 편입된 지역입니다. 호찌민은 다른 베트남 도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요. 이곳은 사이공 강을 끼고 성장하였는데 그야말로 번화한 대도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랑스 식민지배 시절 호찌민은 프랑스 직할령인 코친차이나(Cochinchina)의 중심지였고 남북 분단 시절 남베트남의 수도였습니다. 이미 응우옌 왕조 시절부터 남부 베트남의 중심지였던 호찌민은 기존의 중심지이자 지금은 차이나타운과 같은 쩌런(Cho Lon) 지역과 새롭게 중심지로 성장한 벤응에(Ben Nghe) 지역이 더해지면서 점차 성장해왔습니다. 현재의 호찌민에는 프랑스 식민시절의 다양한 건축물들과 현대 베트남의 번영을 보여주는 마천루들이 들어서있습니다. 도시의 자유를 만끽하고 싶으신 분은 이곳 호찌민으로 여행을 떠나시면 될 것 같아요. 호찌민의 날씨는 북부의 하노이와 달리 1년 내내 여름 날씨로 비가 오지 않는 건기와 비가 오는 우기로만 나누어져 있습니다. 호찌민이 속한 베트남 남부에는 메콩(Mekong) 강변에 위치한 도시인 미토(My Tho), 남부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껀터(Can Tho), 크메르 문명이 공존하는 짜빈(Tra Vinh), 캄보디아에 인접한 국경도시인 쩌우독(Trau Doc) 등이 있습니다. 특히 인도차이나의 젖줄이라고 불리는 메콩 강은 중국 티베트에서 발원하여 버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를 거쳐 베트남을 마지막으로 하여 바다로 빠져 나가는데요. 이곳 메콩 강은 남부 베트남인들에게 풍족한 자원을 제공해주는 원천이기도 합니다. 호찌민에 방문하시는 분들은 호찌민에만 머물러 있으면 조금 따분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메콩 강 투어도 함께 해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호찌민 시의 야경(2017년 5월). 가장 왼쪽에 보이는 높은 빌딩이 호찌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비텍스코 타워(Bitexco tower)이다.


호찌민에 있는 통일궁(2017년 3월). 이곳은 프랑스 식민지배 시절 인도차이나 총독의 관저가 있었던 곳으로 독립 이후 남북 베트남 분단 시절 남베트남의 대통령 관저로 새로 건설되어 사용되었다.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 군대의 전차가 이곳의 담을 부수고 돌입함으로서 남베트남의 종말을 고했다.


  이상으로 북부, 중부, 남부의 대도시인 하노이, 다낭, 호찌민을 중심으로 각 지역의 여행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가장 베트남스럽고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느끼고 싶으신 분들은 하노이를 방문하시면 좋을 것 같고, 힐링과 휴양을 원하시는 분들은 다낭을 방문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도시를 만끽하고 싶으신 분들은 호찌민을 방문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각각의 도시를 방문하여도 그 도시가 속한 북부, 중부, 남부의 여러 곳을 방문하실 수 있기 때문에 본인의 여행 스타일과 취향에 따라서 목적지를 선택하시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비케디(BKD)의 베트남 이야기, [네 번째 이야기] 베트남의 거리


  지난 포스트에서는 하노이 최고의 번화가이자 오랜 역사가 깃든 호안끼엠 호수에 대해 소개해보았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베트남 여행이나 거주에서 주소를 찾는데 큰 도움이 되는 베트남의 거리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베트남에는 우리나라의 도로명 주소와 같이 도로별로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한국이 기존 지번주소의 불편함을 극복하고자 거리에 강남대로, 광화문로와 같은 이름을 붙였듯이 베트남에도 훙브엉(Hùng Vương) 거리, 리타이또(Lý Thái Tổ) 거리 등 거리들이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베트남의 거리에 붙은 이름들이 대부분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 기반한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하노이에서 호찌민 묘와 호찌민이 1945년 독립선언서를 읽었던 바딘 광장 사이에는 훙브엉 거리가 있는데, 이 훙브엉은 '웅왕(雄王)'이라는 존재로 베트남의 건국 시조이다. 또한 하노이의 베트남 군사(軍史) 박물관(Bảo Tàng Lịch Sử Quân Sự Việt Nam) 앞을 지나는 거리의 이름은 디엔비엔푸(Điện Biên Phủ)인데 이곳은 베트남과 라오스 국경의 산악지대로 1954년 베트남이 현대적 무기로 무장한 프랑스를 공격하고 승리를 거두어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마무리 지은 곳이다. 이와 더불어 응우옌 왕조의 수도였던 역사의 도시 후에(Huế)에서 응우옌 왕조의 황성(Kinh Thành) 앞을 지나는 거리의 이름은 23/8(8월 23일)인데 이는 1945년 베트민(Việt Minh 월맹)이 응우옌 왕조로부터 권력을 쟁취한 날이다. 8월 23일 후에에서의 권력 획득에 이어 25일 사이공에서의 권력 획득은 8월 30일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바오다이(Bảo Đại)의 퇴위와 9월 2일의 독립 선언이 발생하였기에 베트남 역사에서 1945년 8월 23일이라는 날짜가 갖는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베트남의 거리에는 역사적 인물의 이름, 역사적 사건의 장소나 날짜를 붙이고 있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이러한 거리의 이름이 한 도시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설명한 훙브엉 거리만 해도 베트남의 수많은 도시에 존재한다. 하노이의 훙브엉 거리, 다낭(Đà Nẵng)의 훙브엉 거리, 후에의 훙브엉 거리 등 여러 도시에 각각의 훙브엉 거리가 있는 것이다. 2015년 말 처음 베트남에 갔을 때 가장 먼저 머물렀던 도시가 메콩 강을 끼고 형성된 도시인 미토(Mỹ Tho)였는데 다른 거리들은 그렇게 넓지 않은데 훙브엉 거리만 유독 넓었던 것을 보고 이유가 궁금했었다. 훙브엉 거리의 시작에는 미토가 속한 성(省)인 띠엔쟝(Tiền Giang) 성의 인민위원회 청사(지방조직의 행정기관. 우리나라의 시청, 도청, 구청 등과 같다.)가 있고 거리를 따라 병원, 성당, 학교, 쇼핑몰과 같은 주요 건물들이 세워져 있다. 후에에서도 훙브엉 거리는 넓고 중요한 건물들이 많이 있는 거리이다. 일반적으로 훙브엉이라는 이름은 각 도시에서 번화가이거나 중요성을 띄는 거리에 붙는 것이다. 훙브엉 이외에도 쩐흥다오(Trần Hưng Đaọ), 레러이(Lê Lợi), 바찌에우(Bà Triệu)와 같은 많은 거리의 이름이 베트남의 여러 도시에 각각 존재하고 있다.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북쪽의 딘띠엔호앙(Đinh Tiên Hoàng), 레타이또(Lê Thái Tổ), 항다오(Hàng Đào) 거리가 만나는 로터리(2017년 11월). 하노이 최대의 번화가 중 한곳으로 로터리 가운데 분수대는 만남의 장소로 여겨진다.


  이러한 거리 이름은 주소를 찾는 것에서도 편리하다. 베트남 거리의 주소체계는 굉장히 알기 좋게 마련되어 있다. 베트남의 주소는 '번지수, 거리명' 식으로 표기되는데 번지수는 홀수와 짝수가 서로 반대편에 있다. 일반적으로 그 거리의 시작점을 등지고 왼쪽이 홀수 번지수, 오른쪽이 짝수 번지수이다. 골목길의 경우에는 '골목길 번지수, Ngõ/Hẻm(골목) 번지수, 거리명'으로 표기가 되는데, 예를 들어 훙브엉 거리의 10번째 건물이 있어야하는 자리에 골목이 있고 그 골목 안에 10번째 집이 있다면 '10, ngõ 31, Hùng Vương'으로 표기하면 되는 것이다.


  베트남의 거리와 번지수의 체계를 알고 있다면 베트남 여행에서 찾아가야할 목적지를 찾기 위해 길을 헤맬 수고를 덜 하게 된다. 구글맵(Google map)에 거리 이름을 입력하면 대략적인 위치를 알 수 있고 번지수를 확인하여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베트남 여행을 하면서 거리의 이름을 보고 그 거리 이름의 유래를 확인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다.

비케디(BKD)의 베트남 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 호안끼엠 호수(Hoan Kiem lake)


  지난 포스트에서는 한국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베트남 쌀국수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보았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하노이의 랜드마크이자 베트남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 장소인 호안끼엠 호수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호안끼엠 호수(Hoan Kiem lake)는 하노이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에게 가장 유명한 장소 중 하나일 것이다. 호안끼엠 호수를 중심으로 형성된 구시가에 여행객들을 위한 수많은 호텔과 식당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호수 주변을 비롯한 구시가 거리 곳곳의 차량을 통제하여 산책로를 형성하고 각종 거리 공연들을 실시하고 있어 호안끼엠 호수는 이전보다 더욱 붐비고 있다. 하노이에 크고 작은 규모의 수많은 호수들이 있고 그 호수들에 얽힌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호안끼엠 호수는 조금 특별하다.


  이곳의 이름인 호안끼엠(Hoàn Kiếm)은 '검을 돌려주다(還劍)'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 호수에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은 15세기 초반 베트남 독립의 역사와 관련된다. 10세기에 중국의 천년 지배를 끝내고 독립 왕조를 세웠던 베트남은 15세기 초 활발한 정복 전쟁을 펼치던 중국 명나라의 영락제(永樂帝, 1402-1424)의 침입을 받게 되었고 그 결과 다시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미 중국으로부터 천년 동안 지배를 받고 독립을 이루었던 베트남 사람들에게 또 다시 중국의 지배를 받으라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곳곳에서 명의 지배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나타났다. 그 중 두각을 드러낸 인물은 레러이(Lê Lợi)였다. 그는 10년에 걸친 지속적인 저항운동 끝에 명나라로부터 독립하여 레(黎 Lê, 1428-1788) 왕조를 건설한 인물이기도 하다. 호안끼엠 호수는 그의 저항운동 속에 등장한다. 레러이가 명나라에 대한 저항운동을 지속하던 시기에 이 호수에서 한 마리의 황금 거북이를 발견하였다. 그 황금 거북이는 입에 검을 물고 있었는데 레러이가 그 검을 받아 명나라와의 전투에 출전하여 승리하였고 결국 베트남은 독립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레러이가 승전을 보고하기 위해 다시 그 호수로 돌아가니 황금 거북이가 주었던 검을 다시 물고 물속으로 돌아가 이 호수에는 호안끼엠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레러이의 황금 거북이 설화 때문인지 호안끼엠 호수 서쪽의 도로 이름이 레타이또(Lê Thái Tổ 黎太祖, 태조는 레러이의 묘호)이다.


호안끼엠 호수의 모습(2016년 7월). 호수 가운데에는 검을 물고 호수도 돌아갔던 거북을 기리기 위한 탑이 세워져 있다.


호안끼엠 호수의 야경(2017년 11월). 불 켜진 거북탑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호안끼엠 호수에는 거북이 여러 마리가 살고 있다고 전해지는데 그 중 한 마리의 박제가 호안끼엠 호수 위에 세워진 응옥썬(Ngọc Sơn) 사당 내부에 전시되어 있다. 호안끼엠의 거북이는 레러이의 황금 거북이 설화에 등장한 이후 베트남 사람들에게 영물(靈物)로 인식되었다. 실제로 하노이가 수도로 정해진지 천년이 되는 해인 2010년에 호안끼엠 호수의 거북이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등 호안끼엠 호수의 거북이는 국가적 경사가 있을 때면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하노이는 호수의 도시라고 불리운다. 홍하가 범람하면서 생긴 수많은 호수들이 하노이 시내 곳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호안끼엠 호수는 중국에 저항하는 베트남의 역사를 보여주는 의미있는 호수이다. 하노이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은 분명 하노이 최고의 번화가 중 하나인 이 호안끼엠 호수를 찾는다. 해가 지고 아름다운 불빛이 가득한 호안끼엠 호수 주변을 거닐면서 호수에 얽힌 거북이 이야기를 떠올려 보는 것도 하노이를 즐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비케디(BKD)의 베트남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 베트남의 쌀국수


  지난 포스트에서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 대해 대략적으로 이야기 해보았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최근 들어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베트남의 쌀국수에 대해 소개해보려 한다. 물론 내가 요리를 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쌀국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우리나라 국수에는 굉장히 많은 종류가 있다. 잔치국수, 칼국수, 비빔국수, 멸치국수 등 들어가는 재료와 조리 방식과 같은 일정한 기준에 따라 국수의 종류가 나누어지는 것이다. 베트남 쌀국수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한국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쌀국수는 여러 종류의 베트남 쌀국수 중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많은 종류의 쌀국수를 이곳에서 모두 소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분량도 한계가 있고 무엇보다 쌀국수에 대한 나의 지식도 그만큼 풍부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일반적인 쌀국수 3가지를 이곳에서 소개한다.


  제일 먼저 소개할 쌀국수는 베트남 북부, 그 중에서도 특히 하노이의 것이 특히 유명한 '퍼'(Phở)이다. 한국에서 파는 대부분의 쌀국수가 퍼에서 기원한 것이니 퍼는 한국인에게 가장 친근한 쌀국수라고 할 수 있겠다.(쌀국수가 한국으로 들어온 초창기에는 베트남어 'Phở'의 알파벳 'Pho'만 표기되어 '포'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발음이고 제대로 된 발음은 '퍼'이다.) 퍼는 하노이 남쪽에 위치한 남딘(Nam Định)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베트남에서도 남딘을 퍼의 기원지로 보고있다. 남딘 역시 하노이와 같이 베트남 북부인데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퍼는 베트남 북부에서 가장 일반적이다. 특히 하노이의 퍼는 그 맛이 좋기로 명성이 자자하다. '퍼=하노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이다. 퍼는 면이 넓적하다. 그리고 소고기를 넣거나 닭고기를 넣어 맛을 낸다. 소고기를 넣은 퍼를 '퍼 보'(Phở bò)라 하고 닭고기를 넣은 퍼를 '퍼 가'(Phở gà)라고 한다. 소고기를 넣은 퍼는 다시 어떤 고기를 넣느냐에 따라서 여러 종류로 구분되는데 가장 일반적인 것은 '퍼 따이'(Phở tái)와 '퍼 찐'(Phở chín)이다. 퍼 따이는 데친 소고기를 넣은 쌀국수이다. 얇게 썰어놓은 소고기를 쌀국수 국물에 살짝 데쳐서 넣은 쌀국수가 퍼 따이가 되는 것이다. 이에 비해 퍼 찐은 완전 익힌 소고기를 넣는다. 퍼 찐을 만들 때에는 고기 덩어리를 통째로 삶은 다음에 삶은 고기를 썰어 쌀국수에 넣는다. 두 가지를 놓고 어느 것을 먹을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쌀국수 집에는 두 가지 메뉴와 더불어 둘 다 들어간 '퍼 따이 찐'(Phở tái chín)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하노이에 살면서 늘 퍼 따이 찐을 먹었다. 퍼 보를 먹는다면 굉장히 진한 소고기 국물을 맛볼 수 있다. 닭고기를 넣어 만든 퍼 가는 퍼 보와는 다른 매력을 가진다. 라임을 짜넣은 소금에 퍼 가에 들어간 닭고기를 찍어먹는 것도 굉장히 맛이 좋다.


전형적인 하노이 퍼 보(2016년 8월). 사진은 '퍼 따이 남'(Phở tái Nạm)이다. 퍼 따이 남은 소고기 양지를 사용한다. 이곳은 새벽 6시에 오픈을 하고 재료가 다 떨어지면 문을 닫고 아침 장사를 접는다. 새벽 6시 30분에만 가도 쌀국수를 먹기 위해 줄을 서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이곳의 쌀국수는 내가 베트남에서 먹어본 쌀국수 중에 가장 맛있었다. 정말 진한 소고기 국물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원래 아침에만 장사를 했었는데 최근에는 저녁에도 오픈을 한다고 한다. 식당 이름은 '퍼 쟈 쭈엔'(Phở Gia Truyền)이고 주소는 49 Bát Đàn, Hà Nội 이다.


퍼 쟈 쭈엔과 더불어 하노이에서 굉장히 유명한 식당인 '퍼 틴'(Phở Thìn)의 퍼 보(2016년 7월). 퍼에 파가 굉장히 많이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파 때문에 그런지 진한 소고기 국물의 퍼 쟈 쭈엔과는 다르게 약간 시원한 맛도 난다. 사진 속 꽈배기 같이 생긴 것은 '꿔이'(Quẩy)라고 한다. 기름에 튀긴 밀가루 반죽으로 퍼 국물에 적셔먹는데 베트남 사람들은 이 꿔이 먹는 것을 좋아한다. 퍼 틴의 주소는 13 Lò Đúc, Hà Nội 이다.


  베트남 북부에 퍼가 있다면 베트남 중부에는 '분 보 후에'(Bún bò Huế)가 있다. 분 보 후에에서 '후에'(Huế)는 도시의 이름이다. 지난 포스트에서 하노이는 19세기 등장한 응우옌 왕조가 수도를 후에로 옮기기 전까지 베트남의 수도로서 역할하였다고 설명하면서 후에를 언급하였다. 후에 음식은 베트남에서 전국적으로 굉장히 유명하여 곳곳에 후에 음식점이 있는데 대부분의 후에 음식점에서 분 보 후에를 판매한다. 분 보 후에는 특이하게 매콤한 빨간 국물에 베이스가 되는 쌀국수이다. 매콤한 국물에 넓적한 퍼와 달리 비교적 둥그런 '분'(Bún)이라는 면을 넣고 그 위에 소고기, 고기 완자, 돼지 선지, 짜까(Chả Cá, 생선으로 만든 어묵) 등을 올린다. 하노이 퍼가 소고기 혹은 닭고기라는 재료 하나로 맛을 냈다면 분 보 후에는 소고기, 돼지고기, 어묵 등을 복합적으로 넣어 풍부한 맛을 낸다.


후에의 쌀국수인 분 보 후에(Photo by 정웅희). 퍼나 후 띠에우와 달리 국물이 은은한 붉은색을 띄고 있다. 분 위에 소고기와 선지, 짜까 등이 올려져 있다. 분 보 후에는 소고기, 돼지고기, 어묵 등이 들어가 맛의 조화를 이룬다.


  베트남 남부에는 '후 띠에우'(Hủ Tiếu)가 있다. 후 띠에우 혹은 '후 띠우'(Hủ Tíu)라고도 불린다. 후 띠에우는 퍼, 분 보 후에와 비교하여 면이 가장 가늘다. 한국의 소면보다도 면이 가느다랗다. 후 띠에우는 베트남 남부의 '미토'(Mỹ Tho)라는 도시의 것이 유명하다. 이 도시를 비롯한 베트남 남부는 메콩 강(Mekong river)을 기반으로 하여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살았다. 메콩 강은 중국 티벳에서 발원하여 버마,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과 같은 대륙부 동남아시아를 모두 거쳐 남중국해로 빠져나온다. 이 거대한 강은 베트남 남부인들에게 막대한 수산 자원을 제공해주었다. 그렇기에 남부 베트남에는 수산물, 해산물 등이 풍부하고 이것이 음식으로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후 띠에우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일반적인 후 띠에우에는 새우, 오징어 등의 해산물들과 간 같은 돼지 부속물이 들어간다. 내가 2015년 12월에 처음 베트남에 도착하여 먹은 음식이 후 띠에우였는데 그 맛에 완전에 매료되어 남부 베트남에 머무르는 동안 줄곧 후 띠에우를 먹었었다. 해산물과 돼지고기의 맛이 합쳐져 깊은 풍미를 낸다. 이러한 풍미는 진한 소고기 국물의 퍼와는 다른 시원하면서도 깊은 맛이다. 후 띠에우는 면과 국물이 함께 나오는 것과 면과 국물이 따로 나오는 것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면과 국물이 따로 나오는 후 띠에우를 더 좋아한다.


미토에서 한 식당에서 먹은 후 띠에우(2017년 2월). 이것은 면과 국물이 따로 나오는 후 띠에우이다. 면 위에는 튀긴 샬롯과 숙주 등을 올린다. 국물에는 새우와 오징어가 들어있고 잘 보이지 않지만 돼지 부속물도 들어있다. 식당 이름은 '후 띠에우 뚜엣 응언'(Hủ Tiếu Tuyết Ngân)으로 주소는 237, Ấp Bắc, Phương 5, Thành phố Mỹ Tho, Tiền Giang 이다.


  이상으로 베트남에서 가장 일반적이고 흔히 볼 수 있는 쌀국수 3가지를 소개하였다. 일반적이고 흔히 볼 수 있다는 말은 곧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 가지의 쌀국수는 일반적이지만 지역마다 그 모습이나 들어가는 재료가 약간씩 차이를 보여 독특하기도 하다. 베트남을 여행하거나 그곳에 거주하면서 여러 도시를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 도시 혹은 지역만의 쌀국수를 먹어보는 것도 여행의 큰 기쁨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비케디(BKD)의 베트남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Hanoi)


  지난 포스트에서는 내가 왜 베트남에서의 거주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짧게나마 써보았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내가 20167월부터 20171월까지 약 6개월 동안 거주했던 '하노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소개해볼까 한다.


  하노이(Hanoi)는 현재 베트남의 수도로 베트남 북부에 위치하고 있. 하노이와 더불어 우리에게 흔히 알려져있는 '호찌민시티(HCMC, 과거에는 사이공으로 불렸다.)'가 베트남 최대의 도시이자 경제의 중심지라면 수도인 하노이는 북부의 대도시이자 베트남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이다. 하노이(Hanoi)라는 지명은 '(Hà )''노이(Nội )'가 결합된 것으로 말 그대로 강 안쪽을 뜻한. 여기서 강은 베트남 북부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홍하(紅河 Red River)'를 이야기 한다. 홍하라는 큰 강을 끼고 있고 이로 인해 형성된 드넓은 델타(Delta)의 지리적 이점 때문에 하노이 근방은 베트남 역사에서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었. 하노이가 베트남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시기는 1010년부터 였. 당시 베트남은 10세기에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여러 왕조들이 들어서고 무너지는 것을 반복하다가 1008년에 건국된 리(Lý ) 왕조가 지배하고 있었. 리 왕조를 개창한 리 타이또(Thái Tổ 太祖)1010년에 처음 하노이를 왕조의 수도로 결정한 인물이. 이곳 하노이가 리 왕조의 수도로 결정된 것과 관련해서 하나의 에피소드가 전해져 내려온다. 베트남의 역사서인 대월사기전서(大越史記全書)에 따르면 처음 타이또가 수도를 옮길 때 배를 타고 가는데 지금의 하노이 땅에서 황룡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당시 하노이에는 '탕롱(Thăng Long 昇龍)'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 '(Thăng )''(Long )'이라는 단어가 결합된 이 명칭은 곧 '용이 승천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 이렇게 1010년에 처음 베트남의 수도가 되었던 탕롱은 19세기 응우옌 왕조가 건설된 이후 수도를 베트남 중부의 후에(Huế)로 옮기기 전까지 계속해서 베트남의 수도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한 1945년 응우옌 왕조가 멸망하면서 다시 베트남의 수도는 하노이로 돌아오게 되었다. 지난 2010년에는 하노이가 수도가 된 지 천년을 기념하는 성대한 행사까지 했다고 하니 하노이의 역사적 깊이를 짐작할 수 있.


현재 베트남 하노이의 중심지에 있는 리 타이또의 동상(2016년 7월)


  이렇듯 역사가 깊은 천년고도 하노이는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임과 더불어 현재 정치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1945년 베트남이 독립한 이후 하노이는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북베트남의 수도가 되었고 1975년 베트남이 통일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의 수도로서 역할하고 있다. 그렇기에 하노이에는 주석궁, 국회의사당, 중앙정부 각부 건물 등의 국가기관들과 더불어 베트남과 교류하고 있는 많은 국가들의 대사관 건물들이 위치하고 있. 특히 호찌민이 1945년 대중들 앞에서 베트남의 독립을 알리는 독립선언서를 읽었던 바딘 광장(Ba Dinh square, Quảng trường Ba Đình)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변에 국회의사당, 중앙정부 건물, 호찌민 묘를 포함하는 호찌민 유적군 등 현대 베트남의 정치와 연관된 건물과 유적들이 있.


바딘 광장 바로 앞에 위치한 호찌민의 묘(2016년 7월)


바딘 광장과 호찌민 묘 근처에 있는 베트남 주석궁(2016년 7월). 호찌민의 전통에 따라 현재 이곳에는 주석이 상주하고 있지 않고 국빈 방문 행사 등 공식적인 국가행사 등을 위해서만 사용된다고 한다.


  현재의 하노이는 이전과 달리 굉장히 큰 면적을 자랑하고 있. 지금도 주변 행정구역들이 하노이로 편입되면서 그 면적이 더욱 넓어지고 있다고 한. 마치 우리의 서울이 조선시대의 한양 도성과 비교하여 그 면적이 몇 배나 늘어난 것과 같이 말이다. 내가 하노이에서도 살아보고 호찌민에서도 살아본 결과 호찌민이 하노이보다 더 현대화 되었고 도시화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베트남에 가는 친구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사는 건 하노이에서, 노는 건 호찌민에서!'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하노이에는 천년에 달하는 오랜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도 베트남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이곳을 거주지로 선택한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나가고 있는 하노이. 하노이는 그곳만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인상깊은 도시이다.

비케디(BKD)의 베트남 이야기, [프롤로그] 베트남 생활의 시작

 

  블로그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건 작년이었다. 2016년 7월에 베트남 거주를 위해 출국하면서 그곳에서의 생활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보고 싶었던 생각이 가득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곳 생활에 적응한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야 티스토리 블로그를 처음 개설하고 글을 쓰게 되었다. 게으름은 인생의 독 :(

 

  1년에 달하던 나의 베트남 생활은 올해 5월 끝이 났고 나는 이미 한국으로 돌아온 지 6개월이 넘었지만 지금이라도 그곳에서의 이야기들을 풀어보려고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거니까!

 

  내가 2016년 처음 베트남행을 결심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로 나의 전공이 베트남사, 즉 베트남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십중팔구 나에게 '왜?'라는 질문이 다시 돌아온다. 심지어 베트남에 거주할 때 베트남인들에게 나를 소개하면서도 이같은 이야기를 하면 그들 역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특히 한국인에게 베트남이라는 나라, 베트남의 역사라는 분야는 아직 너무나도 생소하다. 지금까지 한국에 베트남과 관련되어 알려진 키워드들은 쌀국수, 국제결혼 대상국, 월남전, 사회주의 국가, 호찌민 등과 같이 굉장히 단편적이고 협소한 것들이었다. 최근에 들어와서야 베트남의 다낭이 휴양지로 명성을 떨치면서 한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렇게 생소하고 그중에서도 더욱 그러한 베트남사라는 분야를 공부하게 된 나는 베트남을 평생 곁에 두고 살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나에게 있어 베트남행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둘째로 베트남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사실 이것은 앞서 말한 이유와도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처음 베트남 땅을 밟은 때는 2015년 12월 말이었다. 그 해 1학기와 2학기에 학교에서 동남아시아와 베트남의 역사와 관련된 수업을 수강한 나는 베트남사를 공부하겠다고 다짐하였고 12월 말부터 약 20일에 걸친 베트남 여행을 시작하였다. 남부의 짜빈(Trà Vinh), 미토(Mỹ Tho), 사이공(Sài Gòn)을 돌아보고 중부의 후에(Huế)를 거쳐 북부의 하노이(Hà Nội)까지 여정을 이어갔었다. 이 기간 동안 베트남은 나에게 단순히 '내가 전공하는 나라'를 넘어서 내 삶의 일부로 다가왔다. 베트남이라는 나라와 그곳의 사람들, 음식, 자연경관 등이 나에게 그러한 인상을 심어준 것 같다. 베트남사를 전공하고자 결심하였기에 베트남에서 살아봐야 한다는 막연한 계획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때 처음 '빠른 시일 내로 이곳에서 반드시 살아보리라!'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나의 베트남 거주가 시작되었다. 처음 계획한 기간은 2016년 7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약 6개월 정도였다. 내가 선택한 거주지는 현재 베트남의 수도이자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인 '하노이'였다. 2016년 7월 13일 드디어 하노이의 땅을 다시 밟으면서 나의 베트남 생활이 시작되었다다. 앞으로 이 블로그를 통해 그곳에서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들과 함께 내가 가진 정보들을 공유하려고 한다. 베트남에 대한 나의 지식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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